하늘과 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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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늘과 땅과'는 가이온지 조고로의 역사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우에스기 겐신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겐신의 출생부터 다케다 신겐과의 대립, 가와나카지마 전투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며, 겐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가치관을 심도 있게 묘사한다. 1990년에는 가도카와 하루키에 의해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와타나베 켄이 우에스기 겐신 역을 맡을 예정이었으나 건강 문제로 인해 에노키 타카오키가 대신했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에서 평가가 엇갈렸지만, 가와나카지마 전투 장면의 박진감 넘치는 연출로 호평을 받았다. 또한, 1969년과 2008년에는 NHK와 TV 아사히에서 각각 드라마로 제작되었으며, 만화와 게임으로도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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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땅과 - [영화]에 관한 문서 | |
---|---|
영화 정보 | |
제목 | 천과 지 |
원제 | 天と地と (Ten to Chi to) |
장르 | 역사 영화 |
감독 | 가도카와 하루키 |
제작 | 오카다 유타카 |
각본 | 가도카와 하루키 가마타 도시오 겐지 초고로 요시와라 이사오 |
출연 | 에노키 다카아키 쓰가와 마사히코 아사노 아쓰코 자이젠 나오미 노무라 히로노부 가자마 모리오 이부 마사토 기시다 교코 오타키 히데지 오키타 히로유키 무로타 히데오 나쓰야기 이사오 와타세 쓰네히코 |
음악 | 히나타 다이스케 고무로 데쓰야 |
배급사 | 도에이 주식회사 |
개봉일 | 1990년 6월 23일 |
상영 시간 | 104분 |
국가 | 일본 |
언어 | 일본어 영어 |
제작비 | ¥50억 (미화 약 4천만 달러) |
흥행 수입 | 일본: ¥92억 미국: 미화 307,775달러 |
2. 원작 소설
가이온지 조고로의 역사 소설 《천지인》은 우에스기 겐신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겐신의 출생, 성장 과정, 에치고 통일, 다케다 신겐과의 대립, 가와나카지마 전투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며,[9] 겐신의 인간적인 면모, 고뇌, 비사문천 신앙, 정의와 의리를 중시하는 가치관 등을 심도 있게 묘사한다.
가이온지는 "가와나카지마 전투는 예로부터 문학으로 많이 다루어졌지만, 거의 전부가 다케다 측의 시점에서 묘사된 것이었고, 우에스기 측에서 묘사된 것은 본 적이 없었다"라고 말하며 집필 동기를 밝혔다. 그는 "일본인들에게 일본 역사의 상식을 갖게 하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역사의 진실을 전달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10]
소설에서 야마모토 간스케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메이지 시대 이후 실증주의 역사학의 영향으로 고요군감의 사료적 가치가 의심받고, 간스케의 존재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가이온지는 간스케가 실존하지 않았다는 학설을 지지했다.[11]
소설 《천지인》의 출판 정보는 다음과 같다.
판본 | 출판사 | 출판 연도 | 비고 |
---|---|---|---|
단행본 | 아사히 신문사 | 1962년 | 상, 하 |
단행본 | 아사히 신문사 | 1969년 | 상, 중, 하 |
단행본 | 아사히 신문사 | 1971년 | 가이온지 조고로 전집 제5권 |
단행본 | 고단샤 | 1986년 | 일본 역사 문학관 9, ISBN 4-06-193009-5 |
단행본 | 카도카와 쇼텐 | 1990년 | 상권: ISBN 4-04-872567-X, 하권: ISBN 4-04-872568-8 |
문고본 | 카도카와 문고 | 1966년 | 상, 하 |
문고본 | 카도카와 문고 | 1986년 | 전 5권 |
문고본 | 분게이슌주 | 2004년 | 상권: ISBN 4-16-713543-4, 중권: ISBN 4-16-713544-2, 하권: ISBN 4-16-713545-0 |
2. 1. 줄거리
에치고 국 수호대 '''나가오 타메카게'''의 아들로 태어난 '''토라치요'''(후의 우에스기 겐신)는 출생의 경위 때문에 친아들인지 의심받아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다. 불우한 유년기를 보냈지만, 커가면서 측근들이 놀랄 정도로 총명한 소년으로 자랐다. 특히 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강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의연하게 거부하고,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은 어린애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현명함으로 논박하는 영리함은 어린 나이에도 영웅의 면모를 엿보게 했다. 하지만 타메카게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고, 원복하고 "'''키헤이지 카게토라'''"라는 이름을 하사한 후에도 아들을 멀리하며, 결국에는 거성인 카스가야마 성에서 내쫓았다.[9]이윽고 타메카게는 이웃 나라인 엣츄에서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그 뒤를 적남인 '''하루카게'''가 잇지만, 얼마 안 가 동족인 '''나가오 토시카게'''가 하루카게의 수호대 취임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다. 범용한 하루카게의 그릇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이전부터 있었고, 토시카게가 궐기하자 많은 호족들이 순식간에 그 휘하에 따랐다. 에치고는 분열 상태에 빠졌지만, 게으른 하루카게는 술과 여자에 빠져 신하들의 간언도 듣지 않고, 안일한 생활에 탐닉할 뿐이었다. 한편, 카게토라는 에치고 제일의 유력자인 '''우사미 사다유키'''에게 거두어져 그 밑에서 병학을 가르침받아 차츰 군략의 재능을 꽃피워 간다. 사다유키의 성에 머무는 동안 카게토라는 사다유키의 딸인 '''노미'''와도 알게 되어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기지만, 서투른 성격 탓에 마음속의 생각을 전할 수 없었다. 한 차례 병학을 익힌 후, 여러 나라를 순례하는 여행에 나선 카게토라는, 카이 국에서 국주 '''타케다 하루노부'''의 행렬과 마주친다. 젊은 나이에 수호의 자리에 올라 이미 명장으로 여러 나라에 이름을 알린 그 용감한 모습은 카게토라의 마음에 강하게 새겨졌다.[9]
젊은 카게토라에게 내란을 진압할 수 있는 큰 그릇을 발견한 사다유키는 결기를 설파하고, 카게토라는 적은 병력으로 토시카게를 상대로 군사를 일으킨다. 싸움에 능숙하기로 알려진 토시카게였지만, 카게토라는 그를 마치 손 안의 공처럼 다루며 산뜻하게 베어 버렸다. 첫 출전을 훌륭한 승리로 장식한 카게토라에 세상은 놀라워하며, 군신 비사문천의 아들이 아니냐고 웅성거렸다. 어린 나이에 화려한 군공을 세운 카게토라의 평판은 나라를 뒤덮을 듯이 퍼져나가지만, 형인 하루카게는 이를 좋게 생각하지 않고 그 명성을 질투하여, 결국에는 암살자를 보냈지만 카게토라는 간신히 난을 피한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형에게까지 죽임을 당할 뻔한 자신의 처지를 개탄한 카게토라는, 사다유키에게 지금이야말로 하루카게를 몰아내고 수호대 자리에 올라야 한다는 고무를 받고 형과 싸울 것을 결심한다. 그의 뇌리에는 카이의 수호가 되기 위해 친아버지를 추방한 타케다 하루노부의 모습이 있었다. 하루카게의 군대를 격파한 카게토라는 형을 은거하게 하고, 카스가야마 성에 거처를 정하고 저항 세력도 진압하여, 에치고의 재통일에 성공한다. 마침 수호인 우에스기 씨에도 사람이 끊긴 일도 있어, 카게토라는 수호직에 취임하게 되었다. 약관 20세에 에치고의 국주가 된 카게토라였지만, 때때로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는 허무감에 휩싸이는 일이 있었다. 전부터 카게토라는, 제행무상의 세상 속에서 찰나의 부와 영예를 얻어 무엇이 되느냐는 격렬한 허무감에 시달려 왔지만, 국주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그런 감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염세주의에서 구원을 찾은 카게토라는 불도에 기울어지게 되고, 특히 비사문천을 열심히 신앙하게 된다. 꿈에 나타난 비사문천에게 계시를 받은 카게토라는, 때때로 마음을 태우는 노미에 대한 연모도 버리고, 여색을 끊고 무의 길에 살 것을 결심한다.[9]
쇼군 가문에 의해 정식으로 수호직을 승인받은 지 얼마 안 되어, 호조 우지야스에 맞서 싸우다 패배한 간토 관령 '''우에스기 노리마사'''가 에치고로 망명해 왔다. 관령 우에스기 씨는 오랫동안 오다와라의 호조 씨의 위협에 시달려 왔지만, 결국 지성을 잃고 카게토라에게 보호를 요청해 온 것이었다. 노리마사는 호조 씨를 물리쳐 준다면 우에스기 씨의 명맥과 관령의 직을 양보하겠다고 간청했고, 이를 승낙한 카게토라는 호조 씨와의 전투를 준비한다. 그러나 그 직후, 전부터 시나노 국에 손을 뻗치고 있던 타케다 하루노부가, 결국 북부를 제외한 시나노의 대부분을 평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북시나노를 빼앗기면 인접한 에치고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어, 카게토라는 군사를 이끌고 에치고-시나노 국경에 위치한 가와나카지마를 건너 북시나노에 깊숙이 진입하지만, 하루노부의 훌륭한 지략에 의해 처참하게 패퇴한다. 처음으로 패배를 맛보고 자신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게 된 카게토라는, 상경의 기회에 맞춰 임제종의 고찰인 다이토쿠지에서 참선하여 하나의 깨달음을 얻는다. 번거로운 잡념을 떨쳐버린 그 시야에는 하늘과 땅이 팔방으로 막힘없이 펼쳐지고, 자신의 정신이 오로지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확신한 카게토라는, 설욕을 하기 위해 다시 하루노부에게 도전할 결심을 한다.[9]
에치고로 귀국한 카게토라는, 가와나카지마 주변을 무대로 하루노부와 재차 싸움을 벌였다. 도리와 의를 무엇보다 존중하는 카게토라는, 자신과 달리 음흉한 책략도 서슴지 않는 하루노부를 "간악한 무리"로 싫어했지만, 그 천성의 군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전략, 전술은 정교함을 극해, 본진 깃발에 적힌 손자병법의 문구에 부끄럽지 않은 것이었고, 과거 카게토라는 이 정도의 적을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오케하자마 전투로 인해 스가와 국에서 정변이 일어나, 하루노부의 주의가 우선 그쪽으로 향했기 때문에, 카게토라는 보류되었던 호조 씨와의 싸움에 임한다. 간토에 발을 들인 카게토라는, 호조 측에 협력하는 여러 호족들을 물리치고 파도와 같은 기세로 진격하여, 거성인 오다와라성마저 포위한다. 성을 함락하기까지는 이르지 못했지만, 간토 일원에 무위를 떨친 카게토라는 가마쿠라의 쓰루오카하치만구에서 관령 취임 의식을 거행하고, 우에스기 씨의 명맥을 이어받아 이름을 "'''우에스기 마사토라'''"로 고친다. 이윽고 새로운 관령인 마사토라에게, 타케다 세력이 다시 에치고-시나노 국경을 어지럽히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호조와 모의한 행동임이 분명했고, 마사토라는 관령으로서의 체면을 걸고 대전을 벌이기 위해 준비를 시작하고, 동시에 숙적 하루노부와의 승부를 결정할 각오를 굳힌다. 때마침 병으로 쓰러진 노미를 문병한 마사토라는, 노미에게 지금까지의 마음을 전하고, 쾌유될 때 정실로 맞이할 것을 약속하고 출진한다. 입도하여 새롭게 "'''신겐'''"의 법호를 칭한 하루노부는, 다시 가와나카지마 부근에 진을 쳤다.[9]
가와나카지마에 도착한 마사토라는, 갑자기 적의 뱃속에 진을 치는 대담한 전법을 취했다. 일부러 죽을 자리에 뛰어드는 짓을 한 것은 타케다 측의 방심을 유도하여 십생구사(十死一生)의 결전에 돌입하려는 의도였지만, 적도 만만치 않아 신겐도 그런 생각을 예민하게 간파하고 전열을 재정비하여, 전황은 교착 상태에 빠진다. 잠시 대치 상태가 이어진 후 신겐은 한 가지 계책을 내어, 별동대를 편성하여 마사토라의 진을 습격하고, 허둥지둥 도주해 온 마사토라를 퇴로에 매복해 있던 본대가 쳐부수는 계략을 세운다. 대규모 별동대를 야습에 보낸 신겐은, 자신이 이끄는 본대를 매복시키고, 쫓기는 마사토라를 기다렸다. 그런데 새벽, 자욱한 짙은 안개를 찢고 돌연 눈앞에 마사토라의 부대가 나타났다. 신겐의 속셈을 간파한 마사토라는 몰래 진을 철수시키고, 밤의 어둠에 휩싸여 타케다 군의 옆구리를 찔렀던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마사토라의 출현에 타케다 세력은 경악했고, 부대는 대혼란에 빠졌다. 광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말을 몰아 본진으로 돌입한 마사토라는, 스스로 차고 있던 칼을 휘둘러 신겐을 베려 했고, 신겐은 간신히 군배로 막아냈지만, 그 칼날에 어깨를 베였다.[9]
이윽고 이변을 눈치채고 되돌아온 별동대가 본대와 합류했고, 마사토라는 퇴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신겐의 목을 베는 것은 실패했지만, 여러 해 동안의 숙적에게 한 칼이라도 먹인 충족감을 가슴에 품고, 마사토라는 에치고로 귀국했다. 하지만, 개선한 마사토라를 맞이한 것은 노미의 죽음이었다. 자신의 행복을 빌며 숨을 거둔 임종의 모습을 듣자 승리의 기쁨도 사라지고, 마사토라는 쉴 새 없이 살아온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모든 것이 허무한 것처럼 느껴졌다. 간토 관령직, 우에스기 가문의 명맥 등 수많은 영예를 손에 넣었지만, 가장 사랑하는 여성 단 한 명을 이 가슴에 품을 수는 없었다. 걷잡을 수 없이 흘러넘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채, 마사토라는 이제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가버린 노미를 생각했다.[9]
2. 2. 주요 등장인물
; 우에스기 겐신(나가오 가게토라): 본작의 주인공. 에치고 국의 수호대 나가오 다메카게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지만, 출생 경위 때문에 친아들인지 의심받아 아버지에게 냉대받고, 어머니마저 일찍 여읜 탓에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군략의 재능을 꽃피워 약관 20세에 에치고의 내란을 수습하는 데 성공한다. 천재적인 군사적 재능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에치고 국 수호직에 추대되었고, 마침내 야마노우치 우에스기 씨의 명맥을 상속하여 간토 간레이 직에 취임했다. 이웃 나라인 시나노를 차지하려는 다케다 신겐과 대립하여, 평생의 숙적으로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무대로 격전을 거듭했다.[9]
: 체구는 작지만, 작은 몸 안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듯한 정념을 품고 있다. 의협심이 풍부하고 정에 약하며, 도리에 어긋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일에는 손익 계산을 버리고 행동하며, 설령 죽더라도 한 조각의 의를 밟고 죽는다면 그걸로 본망이라고 생각하고, 전쟁에 관해서도 자신에게 정당성이 없는 한 결코 싸우지 않는다. 또한, 황실이나 막부 등 전통적인 권위를 굳게 존숭하며, 천하는 이름과 실상이 서로 부합하여 성립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천자와 쇼군에게 본래의 권위를 회복시켜야 비로소 태평이 이루어지고 만민이 안식을 얻는 세상이 찾아온다고 믿었으며, 스스로 천하의 주인이 되겠다는 야망은 조금도 품지 않았다. 한편, 정념이 풍부한 반면, 성미가 급하고 격하기 쉬운 면도 있다. 때때로 모든 것을 내던지고 싶어지는 격렬한 울에 시달리는 일이 있으며, 세상의 모든 것이 허무하게만 느껴지는 염세감에 사로잡혀 수호의 자리조차 버리고 고야산에 은둔하려 한 적도 있다. 이러한 염세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도에 격렬하게 기울어져, 술만 좋아했을 뿐 여색을 피하고 육식도 하지 않아 마치 율승과 같은 생활을 했다. 특히 어머니가 출생 전에 백일 참배를 한 탓으로 비사문천을 열렬히 신앙하여, 아침저녁으로 예배를 거르지 않고 카스가야마 성내의 비사문당에서 결가부좌하여 선정을 행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전쟁 전에는 비사문당에 틀어박혀 존상 앞에서 호마를 태우고 명상하며, 한 치의 틈도 없는 완벽한 전략을 세운다. 전쟁을 마치 일종의 예술 행위처럼 생각하고, 푸른 대나무로 만든 지휘봉을 손에 들고 부대를 진퇴시키는 그 솜씨에는 신운조차 감돌아, 많은 가신들을 마음에서 복종하게 했다.
; 나가오 다메카게
: 겐신의 아버지. 에치고 국의 슈고다이를 대대로 맡은 나가오 일족의 총령. 포악한 선군인 우에스기 후사노리를 시해하고 말기의 우에스기 사다자네를 후계자로 세우고, 간토칸레이 우에스기 아키사다와의 싸움(에이쇼의 난)에서 승리하여 정치적 실권을 잡았다. 정무와 군사 모두 능수능란함을 발휘하여 에치고의 사실상의 지배자로서 군림했다.
: 겐신의 생모인 측실 게사 고젠의 잉태가 너무 빨랐기 때문에 겐신이 태어난 후에도 친아들인지 의심을 품었고, 그 때문에 겐신에게 애정을 품지 않고 항상 미묘한 거리를 두고 대했다.
: 영내에서 일어난 잇코잇키의 근원을 끊기 위해 엣츄에 침공하여 일시적으로 일부를 점령하지만, 잇코슈와 지역 호족의 반란에 의해 전사한다. 타메카게가 잇코슈와의 싸움에서 전사했다는 설은 그의 아버지인 요시카게의 사인과 혼동된 것으로 현재의 연구에서는 부정되고 있다.
; 나가오 하루카게
: 타메카게의 적자이자 겐신의 친형. 겐신이 타메카게의 만년의 자식이므로 부자 간의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 타메카게의 사후, 뒤를 이어 슈고다이가 되었지만 아버지를 닮지 않고 그릇이 평범하여, 나라의 혼란을 억누르지 못하고 에치고를 분열시켜 버렸다.
: 나태한 일상을 보내며 주변의 간언도 듣지 않고 음탕한 일에 빠져 곧바로 나라 안의 신망을 잃었다. 겐신도 그 유약한 생활 태도를 간했지만 동생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재능에 대한 질투도 섞여 격렬하게 미워하게 되었고, 미수에 그쳤지만 암살자를 보내기도 했다. 위기를 겨우 넘긴 겐신은 우사미 사다미쓰의 설득으로 형을 칠 것을 결단하고, 군사를 일으켜 하루카게를 꺾었다.
: 겐신과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에는 우에스기 사다자네의 중재로 은거하게 되었고, 나가오 가문의 가독과 슈고다이의 자리를 겐신에게 양보했다. 막대한 은거료를 받은 후에는 정무를 보는 번거로움도 시끄러운 간언을 받을 일도 없는 생활에 만족하여, 수년간의 편안한 은거 생활을 보낸 후에 병사한다.
; 나가오 토시카게
: 에치고 중부 산조를 영토로 하는 산조 나가오 가문의 당주. 타메카게의 사후, 하루카게가 뒤를 이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자신이 슈고다이가 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다. 에치고 제일의 싸움꾼으로 알려져 있으며, 망령인 타메카게의 중신이었던 아키타 치카게를 배반하게 하고, 한때 에치고의 절반을 지배하에 두었다.
: 겐신이 우사미 사다미쓰의 지원 하에 거병하자 이를 어리다고 깔보고 되돌려 보낼 생각으로 출진하지만, 자만이 방심을 불러 겐신의 기략에 빠져 전사한다(토치오 성 전투). 이 극적인 승리로 겐신은 일거에 이름을 떨치며, 조숙한 천재로 알려지게 된다.
; 나가오 후사카게
: 에치고 남부 우에다장을 영토로 하는 우에다 나가오 가문의 당주. 타메카게의 동생으로, 겐신에게는 숙부에 해당한다. 높은 군사 지휘 능력을 가지고, 수많은 전쟁터에서 적절한 군사 지휘를 하여 전공을 올리고, 형의 정권을 지탱했다.
: 타메카게의 사후에는 엉겁결에 하루카게를 섬겼다. 하루카게와 겐신의 대립 시에는 아들 나가오 마사카게를 후계자로 할 것을 조건으로 하루카게를 편들지만, 중간에 하루카게의 나태하고 유약한 인물에 질려 싸움을 팽개치고 갈라섰다. 마사카게가 후계자가 될 약속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카게가 패배한 후에도 쉽사리 겐신에게 항복하려 하지 않았지만, 겐신이 마사카게와 누나 아야의 혼인을 제안한 것으로 인해, 아들과 함께 겐신의 막하에 들어갔다.
: 겐신에 의한 에치고 통일 직후, 노령으로 병을 얻어 병사한다.
; 나가오 마사카게
: 후사카게의 아들. 겐신에게는 사촌 형에 해당하며, 누나 아야를 아내로 맞이했기 때문에 매형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군사적 재능을 크게 발휘하여, 젊은 시절부터 수많은 전쟁터에서 무명을 떨쳤다.
: 타메카게의 사후에는 아버지와 함께 하루카게를 섬겼다. 하루카게가 겐신에게 패배한 후에는 상술한 경위로 굴복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지만, 아야와 인연을 맺은 것으로 인해 겐신의 막하에 들어간다. 그 유능함으로 겐신의 강한 신뢰를 얻어, 겐신이 국외로 나갈 때에는 유수역으로서 에치고를 능숙하게 통솔했다. 자신의 무용과 지략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 겐신을 대신하려는 야심이 마음속에 싹트기도 했지만, 신임을 저버리지 않고 성실하게 보좌역을 계속 수행했다. 그의 아들은 "기헤이지 카게카츠"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후에 아들이 없는 겐신의 양자가 되어 겐신의 후계자가 된다.
3. 영화 (1990년)
1990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로, 가도카와 하루키가 제작 및 감독을 맡았다. 일본 봉건 시대를 배경으로, 우에스기 겐신(에노키 타카아키 분)과 다케다 신겐(츠가와 마사히코 분)의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다룬다.
당시 일본 영화 최고 제작비인 50억 엔[13](총 제작비 55억 엔[14])을 투입하여 웅장한 스케일과 화려한 영상미를 선보였다. 특히 캐나다에서 대부분 촬영되었으며,[4] 1년 동안 1,000마리의 말과 3,0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대규모 전투 장면을 실감 나게 재현했다.
원래 우에스기 겐신 역에는 와타나베 켄이 캐스팅되었으나, 촬영 중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하차하고 에노키 다카아키가 대역을 맡았다.[20] 배급은 당초 도호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배급률을 둘러싼 협상 결렬로 도에이로 변경되었다.[23][24]
작품에 대한 평가는 엇갈렸다. 인물 묘사가 희박하고 의미 불명의 장면이 많다는 비판이 있었던 반면,[21] 클라이맥스인 가와나카지마 전투 장면에서 합성 없이 수만 명의 엑스트라가 움직이는 박력 있는 영상을 높이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21]
이 영화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복잡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 주요 등장인물
배역 | 배우 |
---|---|
우에스기 겐신 | 에노키 타카아키 |
다케다 신겐 | 츠가와 마사히코 |
노미 | 아사노 아츠코 |
야에 | 자이젠 나오미 |
다케다 타로 요시노부 | 노무라 히로노부 |
다케다 덴큐 노부시게 | 이시다 타로 |
카키자키 이즈미노카미 카게이에 | 이토 도시야 |
나오에 야마토노카미 사네쓰나 | 하마다 아키라 |
오쿠마 비젠노카미 토모히데 | 나루세 마사타카 |
호조 단고노카미 타카히로 | 나구모 유스케 |
무라카미 스오노카미 요시키요 | 오바야시 타케시 |
코지마 야타로 | 스도 마사히로 |
고사카단조 | 오키타 히로유키 |
이이토미효부쇼 토라마사 | 무로타 히데오 |
야마모토 간스케 하루유키 | 나츠야기 이사오 |
우사미 스루가노카미 사다유키 | 와타세 츠네히코 |
나야 신조 | 노자키 카이타로 |
토쿠라 야하치로 | 고시마 타쿠야 |
하츠카노 겐고로 | 야마다 아키호 |
쇼다 지츠케 | 이부 마사토 |
아키야마 겐조 | 사다나가 토시 |
타치바나야 마타사부로 | 오오타키 히데지 |
쇼다 지츠케의 정실 | 카자마 유키 |
천황의 칙사 | 카자마 모리오 |
시녀 | 키시다 쿄코 |
내레이터 | 니시무라 토모미치 |
3. 1. 제작 과정
가도카와 하루키는 카도카와 영화 15주년 기념 대작으로 이 영화를 기획했다. 그는 영화 『그림자 무사』나 『둔황』을 뛰어넘고, 『부활의 날』 이상의 자금을 모으기 위해 제작 위원회 방식을 채택했다.[15] 총 48개사에서 1억 엔씩 출자를 받았는데, 대부분의 회사를 가도카와가 직접 방문하여 자금을 모았다. 가도카와는 "버블이 터지기 전이었기에 가능했다. 1, 2년만 늦었어도 영화는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회상했다.가도카와는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부활의 날』과 『둔황』의 해외 전개 실패를 교훈 삼아,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순진한 사람들』을 참고했다. 그는 "올여름, 붉고 검은 엑스터시"라는 캐치프레이즈에 따라, '''우에스기 군을 검은색, 다케다 군을 붉은색으로 통일하여 가와나카지마 전투를 그리는''' 아이디어를 내세워 주목받았다.[15]
우에스기 겐신 역에는 1987년 대하 드라마 『독안룡 마사무네』로 스타덤에 오른 와타나베 켄을 발탁했다. 가도카와는 와타나베의 배역 몰입을 위해 촬영 1년 반 전부터 겐신의 비사문천 신앙, 인생관, 자연관을 교육하고, 함께 비사문천을 모시는 신기산 조호손자사에 참배하기도 했다.[16]
그러나 겐신과 신겐의 인간 드라마를 모두 담으면 상영 시간이 7시간이 넘는다고 판단한 가도카와는, 인간 드라마를 과감히 생략하고 프로모션 비디오 형식의 작품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배우들은 연기할 때 소리 지르지 않고 일상적인 말투로 평탄하게 대사하는 연출을 했다.
영화 음악은 고무로 테츠야에게 의뢰했다. 엔딩 타이틀의 극반은 신시사이저 연주자 미야시타 후미오의 연주에 진언 독경을 덧입히는 등, 기존 시대극과는 다른 참신함을 추구했다.[17]
합전 장면은 실제 가와나카지마가 너무 좁다고 판단하여, 중화인민공화국 동북 지방을 로케이션 후보지로 고려했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는 말이 작고, 장비가 중국 당국에 징수될 우려가 있어, 『부활의 날』 해외 로케이션 경험이 있는 캐나다 캘거리에서 대규모 로케이션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캘거리는 목축업이 발달하여 카우보이가 많아 말을 모으기 쉬웠다. 1989년, 500마리의 말과 3000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하루 8000만 엔, 총 25억 엔을 들여 영화 『워털루』를 참고한 합전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하지만 캘거리 로케이션 중 와타나베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쓰러져 하차했다. 가도카와는 마쓰다 유사쿠를 대역으로 원했으나, 마쓰다 유사쿠 또한 방광암 투병 중이었다. 가도카와는 직접 전화로 부탁했지만, "엑스트라 기마대 한 명이라면"이라는 답변과 함께 거절당했다.[18] 결국 긴급 오디션을 통해 에노키 타카오키를 대역으로 발탁하여 촬영을 속행하고 영화를 공개했다.[20]
3. 2. 평가
이 작품은 등장인물에 대한 묘사가 부족하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장면이 많다는 비판을 받았다.[21] 반면, 클라이맥스인 가와나카지마 전투 장면은 합성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수만 명의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박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21]칸 영화제 심사위원이었던 막스 테시에는 "야심은 있지만 드라마가 약하다"고 지적했다.[21]
와타나베 켄이 우에스기 겐신 역을 계속 연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22] 2007년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와타나베 켄이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을 때, 이 작품에서 하차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그 후의 고생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관련된 인물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에서는 이 영화에 대한 복잡한 시각이 존재할 수 있다.
3. 3. 흥행
일본에서 《하늘과 땅과》는 개봉 전 사전 판매에서 480만 장의 티켓을 판매했다.[5] 1990년 6월 23일 일본에서 215개 스크린으로 개봉하여 84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당시 일본에서 가장 큰 개봉작 중 하나였다.[4] 이 영화는 1990년 일본 국내 시장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배급사 대여료 수입으로 50.5억엔,[6] 총 매출로 92억엔을 벌어들였다.[7]버블 경제 시절에는 기업으로부터 출자를 받아, 기업의 단체 동원에 의해 지지받는 예매권 영화가 다수 제작되었다. 30개 이상의 회사에서 출자를 받은 본작은, 다이에이의 《둔황》과 함께 예매권 영화의 대표작이라고 불린다.[28][29][30][31] 그러나 400만 장이나 되는 예매권이 기업에 뿌려진 결과, 배급 수입에서 50억 엔을 돌파하여 수치상으로는 대히트였지만, 예매권이 티켓 판매점에서 헐값으로 팔려 극장은 한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32] 관련 기업을 통해 판매된 예매권의 총수는 477만 장[33] 또는 약 530만 장[34][35]으로 추정된다.
4. 드라마
1969년 NHK 대하드라마 《천지인》[40], 1990년 니혼TV 드라마 《천지와 ~여명편~일본어》, 2008년 TV 아사히 드라마 《천지인》 등 다양한 버전의 드라마가 제작되었다.
NHK 대하드라마는 최초의 영상화 작품이자 최초의 컬러 작품으로, 이시자카 코지가 주연을 맡았다. 니혼TV 드라마는 오사와 미키오 주연으로, 우에스기 겐신이 당주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다. TV 아사히 드라마는 마츠오카 마사히로 주연으로, TV 아사히 개국 50주년 기념 프로그램이다.
4. 1. NHK 대하드라마 (1969년)
1969년 NHK에서 방송된 최초의 영상화 작품이자, 대하드라마 7번째 작품이며, 최초의 컬러 작품이다.[40] 주연은 이시자카 코지이다. 1969년 1월 5일부터 12월 28일까지 총 52회에 걸쳐 방송되었다. 평균 시청률은 25.6%, 최고 시청률은 32.4%였다.메이지 시대부터 역사학에 도입된 실증주의적 방법으로 인해 야마모토 간스케의 주요 활약이 기록된 『고요군감』의 사료적 가치가 의심받고, 간스케의 존재에도 의문이 제기되었다.[11] 이러한 이유로, 본 작품에는 신겐의 명군사로 알려진 야마모토 간스케가 등장하지 않는다.
4. 2. 니혼TV 드라마 (1990년)
천지와 ~여명편~일본어은 니혼 TV 계열에서 1990년 4월 20일에 방송된 드라마다. 카도카와 영화판 개봉에 맞춰 방송된 프리퀄이며, 오사와 미키오가 연기한 나가오 카게토라(후의 겐신)가 형을 쓰러뜨리고 당주가 되기까지를 그린다.[11] 주연인 오사와 미키오의 21번째 생일에 방송되었다.4. 3. TV 아사히 드라마 (2008년)
2008년 1월 6일에 TV 아사히 계열에서 방송된 설날 텔레비전 드라마이다. TV 아사히 개국 50주년 기념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었으며, 시청률은 9.8% (간토 지역, 비디오 리서치 조사)를 기록했다.[11] 주연은 마츠오카 마사히로가 맡았다. 마쓰오카는 2년 전 같은 방송국에서 설날에 방송된 텔레비전 드라마 『바람의 검심』에서 다케다 신겐을 연기한 바 있다.[11]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배역 | 배우 |
---|---|
나가오 가게토라 | 마츠오카 마사히로 |
노미 | 기무라 요시노 |
가네쓰 신베 | 롯페이 나오마사 |
오니고지마 야타로 | 마토바 코지 |
도쿠라 요하치로 | 타구치 히로마사 |
아키야마 겐조 | 미야시타 유지 |
나가오 마사카게 | 와타나베 잇케이 |
나가오 도시카게 | 후쿠모토 세이조 |
우사미 사다카츠 | 테라지마 스스무 |
우에스기 노리마사 | 후키코시 미츠루 |
시바타 카몬노스케 | 시무라 토고 |
시바타 나가아츠 | 쿠마자키 카츠히코 |
카키자키 이즈미 | 요코야마 카즈토시 |
야마모토 간스케 | 야마시타 신지 |
혼조 요시히데 | 나카하라 타케오 |
무라카미 요시키요 | 마츠시게 유타카 |
오야마다 노부아리 | 와타리 요시후미 |
바바 노부카츠 | 이토 마사유키 |
사나다 유키타카 | 미우라 코이치 |
오가사와라 나가토키 | 시라이 시로 |
스와 고젠 (노부) | 미즈하시 타키미 |
후지무라사키 | 토코시마 요시코 |
이로베 | 타카하시 미츠오미 |
스기하라 | 우치노 켄타 |
겐사부로 | 사토 유키 |
치쿠구 | 모리오카 유타카 |
오토키 | 켄 미사토 |
나가오 하루카게 | 사노 시로 |
다케다 신겐 | 와타베 아츠로 |
우사미 사다유키 | 와타세 츠네히코 |
비샤몬텐 | 키타오지 킨야 |
5. 기타 미디어
이시카와 켄(만화가)에 의해 만화화되었다. 영화판 공개 시에는 카도카와 쇼텐의 미디어 믹스 전략에 따라 표지 커버를 영화의 영상을 이용한 것으로 변경하여 발매되었다.
- (카도카와 쇼텐, 1987년 - 1988년) 전 5권
권 | ISBN |
---|---|
제1권 | ISBN 4-04-852065-2 |
제2권 | ISBN 4-04-852066-0 |
제3권 | ISBN 4-04-852067-9 |
제4권 | ISBN 4-04-852068-7 |
제5권 | ISBN 4-04-852069-5 |
- 애장판 (주오코론신샤, 1996년) 전 2권
권 | ISBN |
---|---|
제1권 | ISBN 4-12-002575-6 |
제2권 | ISBN 4-12-002576-4 |
- 天と地と|천과 지일본어 <上杉謙信物語>|우에스기 겐신 이야기일본어 (고단샤 만화 문고, 1998년) 전 3권
권 | ISBN |
---|---|
상권 | ISBN 4-06-260452-3 |
중권 | ISBN 4-06-260453-1 |
하권 | ISBN 4-06-260454-X |
- (카도카와 쇼텐, 2004년) 전 2권
권 | ISBN |
---|---|
천의 권 | ISBN 4-04-853786-5 |
지의 권 | ISBN 4-04-853787-3 |
영화 버전과의 타이업으로 발매된, 전국 시뮬레이션 게임. 개발진의 당시 대표작인 シュヴァルツシルト|슈바르츠실트일본어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독특한 시스템으로, "겐신이 비사문천당에 틀어박혀, 수명을 깎아 전력을 올린다" 등이 있다.
게임 음악은 영화 버전의 음악을 담당한 코무로 테츠야의 악곡을 바탕으로, 개발 메이커의 음악 담당이 어레인지를 했다.[41]
6. 가와나카지마 전투
이 영화에서 카게토라는 우에스기 겐신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타케다 신겐에 맞서 자신의 에치고 지방을 방어해야 한다. 유명한 전투로는 가와나카지마 전투가 있다.[1]
처음에는 타케다 군대가 더 강력해 보이지만, 카게토라의 전술 덕분에 그는 몇 번의 작은 전투에서 승리하고 신겐의 동생인 노부시게와 신겐의 측근인 칸스케를 죽이는 데 성공한다.[1]
최종 전투에서 타케다와 카게토라는 칼을 들고 맞대결을 벌이고, 카게토라는 타케다에게 상처를 입혀 1561년 10월 가와나카지마 전투에서 승리한다.[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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